안녕, 20대

20대가 간다. 실은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 어.. 주위에서는 꾀나 보채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숫자만 바뀌는 기분이다. 뭐, 20대가 시작될 때도 그랬지. 스무 살 당시에는 전혀 실감 안 나던 어린이였다가 몇 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20대라는 걸 조금은 자각했으니까.

당장 30대가 되었다고 티 나지는 않겠지. 얼굴이 갑자기 늙어지지는 않을 테니. 그러다 서서히 몇 년이 지나고 얼굴에 주름이 더 깊어지면, 그전까지 당연하게 젊은이 혹은 학생으로 내 나이를 가늠하던 지나가는 사람들은 서서히 나를 아줌마로 보게 되겠지. 원래 내 얼굴은 아줌마에 더 가까웠으니. 당연하게 여겨지겠지. 그걸 자각할 때쯤에 우울해질까? 이렇게 서서히 잃어가고 헤어지는 기분일까. 이게 나와의 여행을 끝내러 가는 기분일까.

이렇게 말해도 막상 20대 초반에 쓴 글을 보면, 지금의 내가 쓰는 글 스타일과 너무 달라짐을 느낀다. 이미 나는 정신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감성과 이성의 조합 비율이 달라졌다. 나와 타인에 대해 냉철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판타지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판타지로 분류되는 여러 가지의 것들에 심취하지 않게 되었다. 현실 밖에서 갈망하던 많은 소망은 현실 안에서 잘 살아보고 싶은 욕심으로 변해있었다. 고등학교 때 적어놓은 ’20대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을 거의 못 채웠기 때문에… 그럼 지금의 나는 무능한 어른인걸까.

본의 아니게 내 주위 환경이 더 이상 어린애처럼 보채지 말라고 재촉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지 않을 정도의 빚을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빚의 압박은 팍팍한 약속으로 꼬인 어른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라고 꼬집는다. 내가 가진 돈이 없고, 돈도 많이 못벌어서 매일이 피곤한 삶의 연속이다. 어마어마한 실력도 없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는 겨우 밥만 축낼 정도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게 당연한 삶의 사이클로 들어와버렸다. 그런 나이와 그런 환경이 눈앞에 다가와버렸다. 요즘은 그게 겁나고 두렵고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사는 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낼까.

스무 살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나는 여권을 발급했다. 결국 젊은 시절 속 나는 이 땅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구나… 여권이 있고 돈과 시간이 생기는 어느 날이 된다면 나는 이 땅을 한 번쯤은 벗어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내 삶은 계속되고, 내면의 나이는 이제 어린아이를 벗어나려 한다.

참회

아무것도 몰랐던 무지의 상태에서 태어나 내가 존재하게 되었을 즈음에도, 기억이 안난다고 말하는 무의식의 상태에도 나는 언제나 칭찬받고 확인받고 자유롭고 싶었을거다. 굳이 모르는 기억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나라면 이랬겠지. 지금의 내가 변하지 않았기에 추측이 가능하다.

알고싶지도 않은 많은 것까지 알게되고, 많은 걸 겪은 만큼 이제는 지겨울 때도, 정적일 때도 됬는데
나는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칭얼댄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간생존의 족쇄와 누구나 다 감당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일 하기 싫은데 하고있다.
내 스스로에 집중하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주위 눈치를 보고 흔들린다.

나는 여전히 내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싶고, 내 감정대로 움직이고 싶다. 재미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싶다.

내면에서 온갖 짜증을 다 부리다, 이런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고, 나 자신의 작은 마음의 크기 때문에 한탄하게 된다.

정말로 대한민국에 살아서 중간으로 가기가 버거웠던 걸까.  그냥 내 스스로가 중간까지 가기에 버거운 존재일까.

한심함에 우울해지고, 우울을 곱씹어본다.

내 인디 달링 – 첫번째

처음에는 그를 외모와 나이와는 별개로 소년 감성을 지닌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이많은 사람이라고 다 어른이 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본질적인 내면의 나이는 저마다 다 다르니까.

그 사람과는 취향이 묘하게 맞고, 묘하게 빗겨나간다. 내가 엄청 좋아했던 것들을 그 사람은 어? 나 그거 알긴 알아 정도로 알고 있는 것들이었고, 내가 적당하게 좋아했던 것들을 그 사람은 굉장히 좋아한다고 표현했다. 나는 거기서 “아… 안 맞는구나”라고 맞지 않음을 부정했으나 그는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거고. 이만큼 맞는 것도 정말 잘 맞는 거 아니겠어?”라고 반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어쩌면 굉장히 잘 맞는 취향의 사이가 아닐까 싶기도 해. 너무 취향이 똑같으면 재미없잖아?

타인. 그것도 낯선 남자. 이 만남 자체는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보통은 온갖 흉흉한 세상에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도 모른다는 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알고있는 지식 내에서는 별 무서울게 없었다. 실은.. 잠깐 하룻밤의 불장난이나 지르지모..하는 잘 모르는 세상을 겁 없이 걸어나가려는 수작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뒷감당이 생각보다 정말 무서운 거라는 걸 모른채.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행인 건, 이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

웬 별의별 주제로 잡담을 하루 온종일 떨었다. 취향에 맞는 이야기, 노래 이야기,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건너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던 이야기까지. 어눌한 내 표현력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풀이해준다. 나는 이상하게 다 말하게 돼버렸고, 그 사람은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공감했다. 정말 대화가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어쩌면 대화가 잘 통한다는 느낌은 어쩌면 내 일방적인 감정일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은 관찰력이 좋고 눈치가 빠르다. 그 사람은 나와 달리 감성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객관화 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녔는지 확실한다. 상대방은 저런 사람이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조율한다. 서로 최대한 윈윈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알고 보니 그는 지나온 세월을 겪으며 성격적인 성향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되었다고 하더라.

횡설수설하는 말 안에 들어있는 자기 철학과 본인 입으로는 인생 막 산다고 하면서도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태도, 소년시절에나 할 법한 행동 속에 어른의 매너. 처음 본 사람에게서 나는 그 사람의 다양함을 보았다.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사람과의 첫 만남 뒤에 나는 ‘검정치마’의 ‘나랑 아니면’ 이라는 노래를 내내 듣고 있었다.

행렬안의 사람들

 황금연휴에 나는 가난에 묶여 어디로든 선뜻 나서질 못했다. 금전적인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어디로든 나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시간의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휴일의 의미란 무엇일까. 신선한 힐링이 아닐까? 빠듯한 금전사정을 감안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누릴만한 장소를 물색해봤다. 문득 한강다리에 있는 카페들이 떠올랐다. 제대로 가 본적은 없지만 특유의 매력이 있을것 같다는 편견이 생겼다. 어차피 갈만한 곳도 없던 나는 소소한 마실의 목적지를 집과 가까운 한강카페으로 향했다.  

 동작대교에 위치한 카페 구름은 2층과 3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2층의 창문은 한강공원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었고, 3층은 동작대교와 그 뒤에 펼쳐지는 한강, 여의도, 그리고 일몰이 펼쳐져 있었다. 전체적은 풍경은 2층이 조화로웠지만, 나는 일몰이 펼쳐지는 햇빛에 대한 동경에 이끌려 3층으로 향했다.

3층에 앉았다. 흘러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본다. 이건 전적인 내 시점에서 바라보는 모습들이겠지. 차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실제 자동차들은 운전자 스스로의 목적의지들로 스스로의 행선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겠다 싶은 시시껄렁하고도 무의미한 생각들.  그 사이로 이따금씩 긴 행렬이 스쳐 지나간다. 유독 눈에 띈다. 생각지도 못한 이질감으로 시선을 뺏긴다. 당연하지, 너무 크니까.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행렬에는 ‘당고개’라고 쓰여져 있었다. 행렬안에는 사람들이 뭉쳐있다. 내 동체시력으로는 그 안에 사람들이 몇명 있는지 셀 수있은건 불가능하다. 다만, 그 안의 사람들이 북적이게 가는지 한산하게 가는지는 가벼운 눈찌검으로 가늠할 수는 있겠다 싶어 세어보기도 해본다. 

다시, 눈에 띄는 행렬이 지나간다. 나는 하염없이 행렬안의 빛, 빛 아래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전철 안에는 비어있는 의자가 많았다. 다행히 내 시력만으로도 사람들이 무슨 행위를 하는지 어렴픗이 보였다. 한산했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는 알 턱이 없겠다만, 적어도 불쾌함만큼은 딱히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것은 그동안의 경험에 기반해 그들이 느끼지 않을 감정을 멋대로 단정짓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단지 그들보다 고도가 높은 곳에 앉아있다는 이유로 일어난 우월함의 착각은 잠시뿐이었다. 해가 온전히 사라졌다. 가진거라곤 몸뚱아리 뿐인 작고 작은 인간은 도시가 제공해주는 행렬안에 들어가야 집으로 갈 수 있다. 나 역시도 돌아가려면 큰 흐름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행렬안의 사람들이 되어 집으로 향했다.

이따금씩 4호선을 탄다. 4호선의 열차는 동작대교를 통해 한강을 지나친다. 한강카페에서 바라보는 다리는 생각 외로 시각적인 재미를 준다.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행렬안의 작은 점으로 인식할지도 모를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