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싸이트 토끼 – 내가 새라면

처음 노래를 듣는 순간, 사소하고도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하게 몇 년 전인지, 몇 월 며칠인지도 모를 정도로 별일 없었던 날. 여름날… 방학이었지만 학교에 나가 오전 시간에만 자율학습했던 고등학생 때, 오전 자율학습을 다 끝내고 나는 집까지 걸어서 하교했었다. 평소에는 학교와 집 사이가 꾀 멀어서 걸어 다니기엔 좀 힘들었는데, 그날은 자전거 없이 왜 걸어서 집에 왔는지는 모르겠다. 평소와는 달리 집에 가는 하굣길이 멀었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 잘 가지 않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잡초와 클로버가 무성하게 핀 들판, 무더운 날씨를 위로해주듯 차가운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하굣길에… 바람을 마시며 문득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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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기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참, 단출한 노래다. 딱. 피아노 반주와 에롱이 언니의 목소리와 화음만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단출한 구성은 딱 그 이상을 바랄 것도 없이 따뜻하게 꽉 채워준다. 여름에 나와서 여름이 떠오르는 걸까. 하지만 그 여름이 덥다고 느껴지지 않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여름방학에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는 기분이랄까.

아마 넌 모를 거야
난 너무나 잠시 머무르니까
너무나 말이 없으니까

in lyric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그런 따뜻함은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지켜주는 게 아닐까. 그 누군가가 마치 나에게 “내가 이렇게 지켜주고 있어” 라고 외치는 듯 들려온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잠깐잠깐 찾아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잠깐 머물다가 간다고 말한다. 멜로디도 참… 살랑살랑 여리다. 마치 소녀처럼.

어쩌면 노래 속 ‘나’가 행복이 아닐까. 마치 행복이 소녀처럼 여리고 조심스럽게 몰래몰래 찾아와 잠깐씩 보고 들킬까 봐 나도 모르는 새 지나가는 게 아닐까.

– 원본 글 : http://anezin.blog.me/220744440085

  • 2016-06-26
  • Writting by.anez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