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이슬아 씨를 접했다.

알라딘 뉴스레터에서 처음 알게 된 작가다. 독립 서점계를 휩쓴 장본인이고, 핫한 인물이란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하고 책 구매 화면을 보니, 묘하게 내 취향이었다. 남들이 날 뭐라고 표현하던지 상관없다는 듯한 당당함이 아름다움으로 비치는 사진. 촌스러운 레트로를 사랑하는 듯한 90년대에 찍었을 법한 사진. 그 당당함이 어필하는 관종 행위. 아이고, 이 말은 본인에게는 굉장히 실례되는 말이겠지. 여하튼, 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몰래 훔쳐보고, 원래 이번 달에 사고 싶었던 책을 취소하면서까지 그녀의 책을 부랴부랴 질렀다.

잠깐. 인스타그램을 몰래 훔쳐보고..라는 문구는 설명이 조금 필요할 듯하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으니까. 요즘 인스타그램이 대세니까, 이분도 인스타그램이 분명 있겠지… 생각하고 무턱대고 검색했는데, 한방에 찾지 못했다. 수필집을 낸 이슬아 씨가 나오지 않고 일러스트레이터 이슬아 씨가 나왔다. 이분은 글도 쓰고 그림도 기막히게 그리는 사람인가? 했더니 동명이인의 이슬아 씨였더라. 알고 보니, 지인이 폴로 한 순서대로 나오는 거였고, 내 지인이 일러스트레이터 이슬아 씨를 먼저 폴로 했다. 설마, 이슬아 씨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차례대로 프로필을 눌러보니. 세상에.. 이분은 인스타그램을 세 개의 계정으로 나누어 운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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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공지 및 구독자 모집 일간 이슬아 日刊 李瑟娥 안녕하세요. 이슬아입니다. 저는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연재 노동자입니다. 매일 철봉에 매달리고 물구나무를 서고 이런 저런 잡문을 기록하며 지냅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 기간이 시작되어 수필 연재를 시작합니다. 구독해주실 분들을 찾습니다. 동료 만화가인 잇선씨의 생각을 빌린 연재입니다. 원하는 독자에게 제가 쓰는 수필을 직접 보내는 방식입니다. 저는 마감과 원고료가 있어야만 뭔가를 완성하는 게으름뱅이입니다. 제 수필을 받아주는 곳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었는데요. 아무도 청탁하지 않았어도 힘차고 명랑하게 써보겠습니다. 매일 글을 연재하는 일을 한 달간 해보려고 합니다. 제 글에 구독 신청을 해주시는 분들께는 이메일로 매일 한 편의 수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떤 플랫폼이나 지면을 통하지 않고 제가 직접 글을 전송할 것입니다. 잡지나 블로그에 실리지 않은 글들이며 구독 신청을 해주신 분들은 최초의 독자가 됩니다. 구독료는 한 달 1만 원입니다. 월화수목금 평일 동안 매일 쓰고 4주간 씁니다. 주말에는 쉽니다. 구독하시게 되면 한 달 동안 스무 편의 수필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한 편당 500원인 셈이고 분량은 원고지 매수로 8매 안팎 (A4용지 한 쪽 정도) 입니다. 적어도 500원만큼의 포만감이 있는 글을 매일 쓰기 위해 애쓰겠지만 재미와 감동은 약속할 수 없습니다. 약속할 수 있는 건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내드리는 것뿐입니다. 구독 신청은 2월 11일까지 입니다. 글을 받아보길 원하시는 분들은 프로필에 걸어둔 링크를 통해 구독 신청서를 작성한 뒤 입금해주세요. 11일 이후에는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연재는 2월 12일 월요일부터 시작됩니다. 3월 9일 금요일까지 4주간 계속 될 예정이며 한 달을 실험 해본 뒤 이후에도 진행할지 말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이런 연재를 난생처음 해봐서 저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신청하지 않을까봐 두렵습니다. 한 분만 신청해주셔도 힘차게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부터 학자금 대출 상환이 시작되기 때문에 부디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셨으면 정말 좋겠다!) 연재하는 글 중 아주 일부는 다른 곳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지속을 위한 홍보 용도로 쓰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출판될 단행본에 일부 실릴 수 있습니다. 잇선씨의 이 아이디어가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에게도 좋은 제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분께서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신다면 저도 돈을 내고 구독할 것입니다. 그럼 간절한 마음으로 제 글의 유료 구독자를 기다리겠습니다! 신청하는 곳 : https://goo.gl/forms/ 0BY3lXihY9Mhcvhs2 (신청 링크는 프로필에도 걸어두었습니다. 위 링크에서 글을 받아보실 이메일 주소와 성함을 적어주신 뒤 구독료 입금 계좌를 확인해주세요. 입금 다음 날에 구독 신청 완료 메일이 발송됩니다.) #일간이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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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나는 나를 저리 뻔뻔하게 드러내지 못해 한이 맺혔는데, 그녀는 노골적으로 자기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세 개의 계정에 나누어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공식 활동을 기록하는 공식 계정, 비공개 일상 계정, 노래방이나 취향의 음악을 올리는 계정. 세계의 자신을 끊임없이 어필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면 대단한 관종이라는 인상이 들다가도, 내심 많이 부러웠다. 자기 이름 세 글자로 이렇게 자기 자신을 노골적으로 노출할 수 있고, 글과 일상으로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구나.


알라딘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하고, 나는 책 커버를 감싸면서 그녀의 소개 글을 잠깐 읽어보았다. 나보다 어리다. 어린 나이에 이런 과감한 프로젝트를 펼쳐내고, 이 지경까지 도달하나. 아니지. 20대 후반이라는 나이 대면 사실 세상에 활발하게 활동하기 좋은 나이겠지. 오히려 내가 너무 늙어서 더 이상은 세상에 활발하게 활동해선 안될 나이인 게 아닐까. 나는 괜스레 의기소침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제대로 그녀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짧은 호흡의 일기 같은 수필집…. 같다가도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도 꽤 많이 적어냈더라. 읽다가 글에 집중을 못 했다. 점점 내가 예전에 언젠가는 꼭 해야지 했던… 프로젝트만 아른거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금의 내가 다시 재가공해보자는 나 혼자서 결심한 프로젝트. 나는 마음속에서만 아른거리고 말았는데, 그녀는 이렇게 실천했구나… 생각에 어느새 그녀의 글은 내 머리로 들어가지 못했고, 나는 또다시 의기소침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다. 나는 어느새 나보다 어린 그녀를 시샘하고 있고, 질투하고 있었다. 부러운 감정에 휩쓸린 나는 글을 열심히 읽고 싶어지지 않았다. 차례대로 읽지 않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아무렇게나 읽어버렸다. 회색빛 배경이 눈에 띄어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읽었다. 뉴스레터 후기를 작성한 글이 보였다. 글 속에서 빈번히, 지각해서 죄송하다는 뉘앙스의 문장이 적혀있었다. 첫 번째 연재를 마치는 글에서, 그녀는 날마다 노트북 앞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고 적었다. 느끼는 감정은 다 비슷하구나… 싶다가도 그녀는 육체적 힘듦을 떨쳐내고 이뤄냈다. 그에 비해 나는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다. 결국 그 차이였다. 결국,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의 페이스대로 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도 내가 가는 길로 가면 될 일이다.

그녀의 수필집은 다른 수필집에 비해 두꺼운 편이었다. 언제 다 읽을진 모르겠고, 어쩌면 다 읽지 않고 책장 속에 머물러 있을 지도 모를 일이지. 구매한 김에, 이번 설 연휴에는 그녀의 수필집을 들고 가 틈틈이 읽어보곤 했다. 4월의 기록까지는 봤다. 참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하면서도 같은 주제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데를 비교하는 재미랄까. 당분간은 이 책만 붙잡고 있을지도.

안녕, 20대

20대가 간다. 실은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 어.. 주위에서는 꾀나 보채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숫자만 바뀌는 기분이다. 뭐, 20대가 시작될 때도 그랬지. 스무 살 당시에는 전혀 실감 안 나던 어린이였다가 몇 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20대라는 걸 조금은 자각했으니까.

당장 30대가 되었다고 티 나지는 않겠지. 얼굴이 갑자기 늙어지지는 않을 테니. 그러다 서서히 몇 년이 지나고 얼굴에 주름이 더 깊어지면, 그전까지 당연하게 젊은이 혹은 학생으로 내 나이를 가늠하던 지나가는 사람들은 서서히 나를 아줌마로 보게 되겠지. 원래 내 얼굴은 아줌마에 더 가까웠으니. 당연하게 여겨지겠지. 그걸 자각할 때쯤에 우울해질까? 이렇게 서서히 잃어가고 헤어지는 기분일까. 이게 나와의 여행을 끝내러 가는 기분일까.

이렇게 말해도 막상 20대 초반에 쓴 글을 보면, 지금의 내가 쓰는 글 스타일과 너무 달라짐을 느낀다. 이미 나는 정신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감성과 이성의 조합 비율이 달라졌다. 나와 타인에 대해 냉철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판타지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판타지로 분류되는 여러 가지의 것들에 심취하지 않게 되었다. 현실 밖에서 갈망하던 많은 소망은 현실 안에서 잘 살아보고 싶은 욕심으로 변해있었다. 고등학교 때 적어놓은 ’20대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을 거의 못 채웠기 때문에… 그럼 지금의 나는 무능한 어른인걸까.

본의 아니게 내 주위 환경이 더 이상 어린애처럼 보채지 말라고 재촉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지 않을 정도의 빚을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빚의 압박은 팍팍한 약속으로 꼬인 어른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라고 꼬집는다. 내가 가진 돈이 없고, 돈도 많이 못벌어서 매일이 피곤한 삶의 연속이다. 어마어마한 실력도 없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는 겨우 밥만 축낼 정도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게 당연한 삶의 사이클로 들어와버렸다. 그런 나이와 그런 환경이 눈앞에 다가와버렸다. 요즘은 그게 겁나고 두렵고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사는 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낼까.

스무 살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나는 여권을 발급했다. 결국 젊은 시절 속 나는 이 땅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구나… 여권이 있고 돈과 시간이 생기는 어느 날이 된다면 나는 이 땅을 한 번쯤은 벗어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내 삶은 계속되고, 내면의 나이는 이제 어린아이를 벗어나려 한다.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 W (Where The Story Ends)

당시의 그림쟁이 사이에서는 ‘핫’했던 노래다. 트위터가 활성화 되기 전, 덕후들의 온라인 속 자기공간을 네이버 블로그가 차지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블로그에서는 스킨,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폰트, 강제로 재생되던 BGM으로 자기만의 정체성을 표현하던 시기였다. 나는 이런걸 좋아해!라고 일종의 취향강요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다양한 별별노래를 접하던 시기였고, 우연히 듣게되는 누군가의 BGM을 통해 MP3속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가던 시기 였다. “만화가의 사려깊은 고양이”라는 노래 역시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그 당시 나는 4차원이 되고싶었던 중2병 환자였고, 독특해지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킬만한 묘하게 홀릴만한 궁금증이 생기는 노래로써 듣게 되었다.

노래는 단지 제목이 가진 유니크함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선님의 독특한 숨결과 천둥치는 밤을 연상케하는 편곡은 하나의 만화 속 상황을 연상하게 되었고, 그 속의 한 장면으로 빨려들어간듯한 기분으로 노래안의 상황에 완벽하게 몰입시킨다. 내가 만화가가 아님에도 만화가가 된 듯 하고, 혹은 내가 고양이가 아님에도 만화가의 곁을 지켜주는 고양이가 된듯 하다. 소소한 누군가의 일상안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포근함은 천둥소리와 맞물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에 들으면 무서움을 감싸는 듯한 위로를 전해 듣는다.

참회

아무것도 몰랐던 무지의 상태에서 태어나 내가 존재하게 되었을 즈음에도, 기억이 안난다고 말하는 무의식의 상태에도 나는 언제나 칭찬받고 확인받고 자유롭고 싶었을거다. 굳이 모르는 기억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나라면 이랬겠지. 지금의 내가 변하지 않았기에 추측이 가능하다.

알고싶지도 않은 많은 것까지 알게되고, 많은 걸 겪은 만큼 이제는 지겨울 때도, 정적일 때도 됬는데
나는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칭얼댄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간생존의 족쇄와 누구나 다 감당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일 하기 싫은데 하고있다.
내 스스로에 집중하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주위 눈치를 보고 흔들린다.

나는 여전히 내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싶고, 내 감정대로 움직이고 싶다. 재미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싶다.

내면에서 온갖 짜증을 다 부리다, 이런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고, 나 자신의 작은 마음의 크기 때문에 한탄하게 된다.

정말로 대한민국에 살아서 중간으로 가기가 버거웠던 걸까.  그냥 내 스스로가 중간까지 가기에 버거운 존재일까.

한심함에 우울해지고, 우울을 곱씹어본다.